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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소, 닭, 연어... 이건 오리, 염소, 양, 잉어... 저건 게, 조개, 달팽이, 왕새우... 저건 멍게, 해삼, 상어 지느러미, 롭스터...’
눈하는 채식주의자였기에 회식이 있을 때는 밥과 김치로만 때우는데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식탁에는 밥과 김치가 보이지 않았다.
‘밤 10시가 넘어서... 고기 축제라도 하는 것 같아... 먹고 오기를 잘했어...’
이미 식탁은 진수성찬이었지만, 전문 요리사처럼 하얀 상의에 두건을 쓴 남자가 계속해서 음식을 내오고 있었다. 커다란 접시를 겹겹이 들고 있는 모습이 마치 곡예사를 연상케 했지만, 모두가 대화를 하는 데 정신이 없어서 요리사한테 눈길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고작 다섯 명이 먹는 식탁에... 상다리 부러지겠어...’
눈하는 먹는 시늉만 하면서 꿔다 놓은 보리 자루처럼 저녁상에 앉아 있었다. 모두가 알아듣기 힘든 발음에다 외국어까지 종종 사용하면서, 옆 사람만이 근근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자기네들끼리만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 같아... 왜 나를 초대한 거지?’
아무도 눈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아무도 눈하나 눈하의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심지어 눈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었지만 눈하는 진땀이 나서 젖은 옷이 마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
소개
국장이 눈하를 초대 하면서 찾아오는 길을 손으로 직접 그려줄 때, 눈하는 노파심에서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는 늙은 부모님을 연상하였었다.
‘국장이 그려 준 지도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어... 분명히 잘못 들어온 줄 알고 돌아갔을 거야... 그랬다가는 평생 눈 밖에 나서... 아니 쫓겨났을 수도 있어... 정말 다행이야...’
깜깜한 밤에 신호등은 물론 가로등도 없고, 위치 추적 전산 시스템에도 나오지 않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으슥한 산 속의 좁은 숲길을 헤매듯이 한참 들어오자 갑자기 거대한 2층 저택이 보였다.
‘어떻게 현대에 지도에도 안 나온 땅이...’
그때, 오던 길마다 세워져 있던 출입금지와 입산금지 표지판들이 떠올랐다.
‘이 곳은 국가 지정 출입금지 지역이 분명해.’
결국 집에 도착했을 때, 눈하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길을 헤매면서 길을 잃을까봐, 모임에 늦을 까봐 조바심이 나는데다, 빌려 쓰고 있는 차가 나뭇가지에 긁힐까봐 걱정까지 되었고,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서 에어콘도 사용하지 않아서 온 몸이 식은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던 것이다.
‘화장실 먼저 가서 땀을 닦아야겠다.’
집으로 들어가면서 눈하는 화장실을 찾았지만, 눈하의 도착을 본 국장은 땀범벅이 되어 있는 눈하의 모습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하를 끌고 갔다.
“손 회장님,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손 회장이라는 자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곁눈으로 눈하를 얼찐 쳐다보더니 건성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마치 옛날에 왕이 신하의 입맞춤을 기대하면서 내밀듯이 왼손의 손등을 보이고 있었다. 눈하는 잠시 머뭇거리며 술잔을 들고 있는 손 회장의 오른 손을 보고는 두 손으로 손 회장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 눈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손 회장은 눈하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이 분이 전 세계의 실제 경제를 손아귀에 휘어잡고 계신 분이야. 손 회장님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어요...”
옆에서 굽실거리고 있는 국장의 모습이 옛날 사극에서 보았던 간신을 떠오르게 하였다.
손 회장은 국장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다른 무리가 있는 곳으로 발을 끌다시피 하면서 걸어갔다. 국장은 손 회장의 뒷모습에 대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눈하도 국장을 따라서 또 다시 90도로 허리를 구부렸다.
“거 유명한 컴퓨터 재벌 대여섯 명을 합쳐도 이분 재산의 10분의 1도 안 돼... 1분당 몇 천억을 번다는 중동 왕 보다, 지폐에 불을 붙여서 담배를 핀다는 동양의 갑부들보다도 더 부자야... 손 회장님한테 깍듯이 잘 보이면 돈방석에 앉아서 평생 편하게 살게 될 거라고... 알았어? 하하하!”
눈하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귓속말을 하는 국장의 얼굴에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입이 귀에서 귀까지 찢어지도록 미소가 만발해 있었다.
‘방송국에서 보이던 총책임자로서의 위엄은 온데간데없고...’
국장은 어느 새 권력에 빌붙어 사는 소인배의 모습으로 돌변해 있었다.
계급
물에 기름 뜨듯, 기름에 물 뜨듯, 혼자서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눈하는 한없이 작아 보이는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한 그들의 태도에서 자신이 이 방에서는 최하위층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명백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 여태, 어디를 가든, 한 번도 이런 위치에 있어 본 적이 없었는데... 하류니 상류니 그런 개념도 아예 없었는데...’
눈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사한테 외면당할 때도 있었지만, 밖에서는 성공했다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었다.
‘완전히 딴 세상 같아... 17세기도 아니고, 이렇게 커다란 신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니... 재력의 힘이...’
대법원에서 일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갑부들의 얼굴을 대할 기회가 있었지만, 손 회장을 비롯하여 저녁식사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눈하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얼굴들이었다.
‘이들이 진짜 실세들이구나...’
눈하는 양주를 들이켰다.
‘이렇게 비싼 양주를 언제 어디서 또 마셔보겠어... 후후’
눈하가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모두들 일어나 후식이 마련되어 있다는 다른 방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진수성찬의 무료했던 저녁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후식
눈하가 자리를 옮겨 방으로 들어갔을 때는 모두들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상에는 눈하가 후식이라고 생각하는 과일은 보이지 않고 비싸게 보이는 과자, 빵, 케익, 쵸콜렛만이 쟁반에 잔뜩 담겨 있었다.
‘배도 안 부르나?’
눈하는 방을 둘러보았다. 한 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조각을 한 분수가 형형색색 모양과 색을 달리하면서 물을 뿜어대고 있었고, 커다란 디지털 그림들이 벽마다 걸려서 매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으리으리한 고가로 보이는 가구들과 장식품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일반 부자집에서 볼 수 있는 돈을 모아 주고 행운을 불러 온다는 커다란 화분, 코끼리 상, 달마액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전부 미신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외인데... 화분도 하나 없고... 유명 작품도 없어... 저런 컴퓨터 그림이 비싼가? 전기 값은 많이 나오겠다...’
눈하는 고가의 예술 작품을 다룬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림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녁 시중을 들던 요리사가 찻잔을 들고 들어오자 진한 커피 냄새가 방안을 진동했다.
“이제 가 봐!”
국장이 요리사에게 말하자, 요리사는 찻잔을 내려놓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뒷걸음질 쳤다.
‘옛날에 신하가 왕을 대하는 태도 같아...’
눈하는 한 쪽 구석에 앉아서 눈으로 영화를 찍듯이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듣기만 하던 갑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것도 그리 지루하지는 않아... 후후... 아무도 뚫어지게 본다고 신경도 안 쓰고...’
국장은 손 회장 앞에서 여전히 온갖 아양을 다 떨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새벽으로 달음질 쳤고, 눈하도 주위 환경에 비교적 익숙해졌다. 이름만 들어보았던 비싼 양주를 원 없이 마시고 속이 따뜻하게 녹는 느낌이 들자, 눈하는 최하층이라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손 회장 같은 권력자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다는 사실에 어느 덧,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상위 1%의 모임이야...’
농담
사업
후식을 먹으면서도 그들은 저녁식사 중에 하던 농담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눈하는 여전히 듣는 시늉만 하였지만, 그래도, 띄엄띄엄 끊겨 들리는 단어들이 연결되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때... 노란... 기억... 열 셋... 교복...”
“짧은 머... 가발... 떨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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