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인

해탈
박씨
박씨의 집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지나가던 어느 누구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들어와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박씨는 길거리를 가다가도 배를 굶고 있는 거지를 보면 가던 길도 멈추고 데려다가 씻도록 하고, 옷과 먹을 것을 주기도 했다. 심지어, 떠돌아다니는 개들까지 비바람과 추위를 피하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박씨는 갓 결혼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베풀 줄 아는 심오한 자비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박씨는 어질다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고,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마을의 모든 이들은 박씨를 마님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문맹
그러던 어느 날, 박씨는 대부분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글을 읽을 줄 몰라서남이 하는 말만을 듣고는 헛된 지식에 속아 종종 잘못 된 사색을 하고 그른 길에 발을 내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얕은 귀를 가지고 있구나...’
‘지식이 불어나지를 못하니 스스로 돕지를 못하고 있어.’
‘글을 읽을 줄 모르니 마치 하루살이 같이 살고 있어.’
‘책을 읽으면 사고의 깊이가 깊어질 텐데...’
‘스스로 지식을 불릴 수 있으려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해.’
박씨는 스스로 책을 읽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글에는 진리가 적혀 있는데...’
‘진리는 남에게 들어서 하루아침에 깨닫기는 힘든 법이야.’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은 진리를 만나기 힘들어.’
‘진리란 스스로 시간을 두고 소화를 해야 얻어지는 거야.’
‘글자를 읽을 줄 모르니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어.’
이후, 박씨는 사명감을 가지고 글을 가르치고 책속에 담긴 진실을 전달하는일에 열의를 두게 되었다. 그리하여 배울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는 남녀노소, 계급을 불문하고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글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박씨의 열의만큼이나 글을 배우고자 하는 자들도 밤에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적극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박씨는 또한, 눈이 나빠 글을 읽지 못하는 어르신들이나 장님들을 위해서는 글을 직접 읽어 주기도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읽고 싶다는 책을 가져오기도 했고, 요청을 하기도 했다.
“이 글 좀 읽어 주세요, 마님.”
“마님, ㅇㅇ라는 책에 대해서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ㄱㄱ라는 책의 내용이 알고 싶어요.”
박씨는 마을 사람들의 요청을 마다하지 않고 순서대로읽어주었다. 읽어달라는 책이 없을 때는 책방에서 직접 구매하기도 하고, 수소문을 하여 얻어오기도 했다. 그리하여, 마님이 글을 읽는 날에는 마님 집 마루는 물론 마당까지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황대감
박씨의 바깥주인인 황대감도 마님에게 걸맞는 성품을 지니고서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조정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마님보다는 대하기를 어려워했지만, 사실, 황대감을 아는 자들은 황대감의 마음이 얼어있는 얼음도 녹일 정도로 온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님이 마을 사람들을 돌보느라 바빠서 집안일을 소홀히 하게 될 때도 황대감은 언짢은 얼굴 표정 한 번 짓지 않았다.
“어차피 한 세상 살다가 갈 것인데 모두들 좋게좋게 살다가 가야지.”
그것이 황대감의 인생관이었다.
게다가, 황대감은 부인이 언젠가는 시간을 내서 자신의 맡은 바를 완수하는 책임감이 강한 여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훈계
황대감의 온화한 성품은 선천적이기도 했지만, 후천적인영향이 더 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황대감은 어렸을 때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도록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황대감의 할아버지는 분노와 원한이 악마가 먹고 사는 밥같은 것이라고 항상 훈계를 하셨기 때문이다.
“악마는 너가 화낼 때를 기다리고 있느니라.”
“인간은 화를 내면 판단이 흐려지기 때문이야.”
“악마는 인간들의 판단력이 흐려질 때 영혼을 빼먹는단다.”
“악마는 자신의 영혼이 없어.”
“인간들은 영혼을 뺏기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영혼을 뺏은 인간을 악마는 조종할 수 있거든.”
“영혼은 육체보다도 중요한 거야.”
“절대로 악마에게 꼬리 잡힐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악마는 인간들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 목적이란다.”
“한번 잡히면 헤어나기가 힘들어.”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귀가 닳도록 분노에 대한 훈계를 듣기는 했지만, 황대감은 사실 분노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를 정도로 온화한 환경에서 자랐다. 모두가 우러러 보는 집안의 자제로서 분노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침략
그러던 어느 날,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터진다. 나태하고 안일하던 왕족들로 인해서 국가의 방어가 느슨해지자, 이 틈을 타서 왜구들이 침략을 해 온 것이다.
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터에 당한 일이라 왜구들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와 순식간에 수도로 쳐들어 올 수 있었다.
다급해진 왕족들은 왜구의 침략을 백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자신들의 몸만 피신하는 데에 급급해 했다. 백성들에게 왜구의 침략을 알리기는커녕, 뒤에 남은 백성들을 자신들을 따라오는 왜구들을 지연시키는 방패막이로 사용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왕족들은 저장해 놓았던 금은보화, 귀중 문서,식량을 챙겨서 비밀리에 도망 갔고, 뒤에 남은 충신들은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난 왜구에 맞서서 나라를 지키며 싸우다가 죽어갔다. 한편, 간신들은 들이닥친 외적에게 복종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였다.


黃土白空황백 ⓒ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