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나한
어느 날
1.
나한이 계산대로 다가가자 계산대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희죽희죽 미소를 짓는다. 나한은 경계를 해야 할지, 예의로써 같이 웃어줘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나한에게 관심을 보였던 남자들은 선의를 가진 자들보다 흑심을 품고 치근덕거리는 자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고용인 같지 않은데...’
‘설마 상가 주인이...’
그것은 뜻밖이었다. 대부분의 치근덕거리던 남자들은 자신들도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기에 항상 자신의 정체나 연락처를 알 수 없도록 숨겼기 때문이다.
‘저렇게 착해 보이는데...’
나한은 선하게 생긴 겉모습과는 달리 삐뚤어진 속모습을 가졌던 남자들을 만났던 기억을 되살렸다.
‘다시는 여기 오면 안 되겠다...’
‘그냥 나가 버릴까?’
‘다른 데 가서 또 찾기가 귀찮은데...’
사실, 속모습은 누구나 그대로 겉모습으로 노출되고 있었다. 속이 검은 사람의 겉이 절대로 흰색일 수가 없기 때문이고, 속이 하얀 사람의 겉이 절대로 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한의 눈은 아직, 속모습을 반영하는 진짜 겉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지 않았었다. 나한의 눈에는 여전히 진짜 겉모습을 가리고 있는 가식적인 겉모습만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한이 그렇게 주저하고 있을 때, 미소를 짓던 남자가 말한다.
“손님이 사람들을 끌고 왔네요.”
“예?”
“손님이 온 이후로 사람들이 따라 들어와서 상가가 가득 찼어요.”
나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한이 들어올 때는 상가 안에 분명히 한 명도 없었는데 지금 보니 상가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원래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나한은 그제서야 겸연쩍은 미소를 보였다.
“장사를 오래하다 보니까 그게 보이더군요.”
나한은 한편으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을 했던 것이 창피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갑을 꺼내 들었다.
“너무 고마워서... 이거 그냥 선물로 드려야지.”
“예?”
“그래야지, 저한테도 복이 되서 장사가 잘 되거든요.”
“정말이요?”
“하루 종일 텅 비어있었는데, 손님 오신 이후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요. 하하하.”
가게 주인은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한이 계산하려던 것을 그대로 나한의 손에 안겨주었다.
“자주 오세요.”
“아, 예, 감사합니다.”
그때, 순간적으로 비싼 것도 공짜로 줬을까 하는 의아심이 나한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비싼 거 살걸...’
‘비싼 거 샀으면 공짜로 주지 않고 할인 해줬을 거야.’
상가를 나서는 나한의 발걸음이 가벼워진 듯했다. 동시에, 별로 새롭지는 않은, 익숙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여전해...’
2.
나한은 어렸을 때부터, 어디를 가든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나한을 의식하였었다. 그런 점을 나한도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사람들에게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한이 어렸을 때 동네 상가 주인은 나한보고 자신이 경영하는 상가에 와서 하루 종일 앉아 있으라고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너가 먹고 싶은 거 하루 종일 먹어도 돼.”
“와서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여기 좋잖아.”
“사람 구경도 하고.”
사람들은 그것이 나한에게서 넘쳐 흘러나오는 예술적인 창의성 때문이라거나, 전문 운동선수를 능가하는 나한의 타고난 운동신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한을 미대에 보내지 그러세요?”
“제가 가르치면 일류대 미대는 거뜬히 들어 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만 와도 되요.”
“전문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워보세요.”
“어차피 시작한 피아노, 그냥 버리기 아깝잖아요. 재능도 있는데...”
“유명 피아니스트한테 한 달에 한 번 레슨도 받을 수 있어요.”
“나한에게 수영을 시켜보세요.”
“지금부터 제가 훈련시키면 중고등학교 때부터 국제 경기에 나갈 수 있어요.”
“올림픽 메달 하나 따놓으면 평생 먹고 사는 거 걱정안해도 되요.”
“나한이 기계체조를 해보면 어떨까요?”
”제가 아시는 분이 국가대표였는데 후배를 양성하는데 그렇게 사람이 좋으시거든요?”
“나한은 타고난 체형을 가지고 있어요.”
“나한이 테니스를 하면 크게 성공하겠는데요?”
“프로로 나가면 금방 유명해지겠어요.”
“프로들 돈 많이 버는 거 아시죠?”
나한의 선천적 예술성과 운동신경을 감지한 사람들은 나한이 어렸을 때부터 나한을 탐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탐한 것은 사실상 나한이 아니라, 나한으로 인해서 벌어들일 수 있는 자신들의 금전적 이득과 그에 따른 유명세였다.
3.
나한의 어머니는 항상 뿌듯한 마음으로 나한을 자랑 하고 다녔다.
“내가 왠지 피아노 학원을 보내고 싶더라고요...”
“5살 때부터 피아노 배웠죠.”
“그래서 그런 지 예술성이 철철 넘치지 뭐예요”
“사실 후천적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 났다고 하긴 하던데...”
“누구를 닮았는지. 호호호.”
“쟤 아버지가 그렇게 등산도 하고 운동을 좋아하더니...”
“학교에서 축구 선수였데요.”
“아버지가 운동만 잘했지 예술성은 없는데...”
“하긴, 내가 젊었을 때 미대를 가려고 했었거든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무용을 좋아했죠.”
“발레건 한국 무용이건 무용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었어요. 호호호.”
“집에서 뒷받침만 했으면 아마도 지금 쯤 무용가가 되었을 거예요. 호호호.”
“주위에서 우리 나한을 서로 데려갈려고 난리예요. 호호호”
4.
게다가, 나한은 어렸을 때부터 출중한 외모에 키도 또래들보다 훨씬 컸다. 한 번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나한을 보고서 어린 연예인을 발굴한다는 사람이 집까지 따라왔던 적이 있었다.
“나한을 연예계로 한 번 내보내 보세요.”
“여기 제 명함입니다. 한 번 주위에 알아보세요. 제가 돈버는 연예인 만드는 걸로 유명하거든요.”
“저한테 맡겨 주시면 매니저로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한 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상상을 초월하실 겁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나한이 눈에 띄는 이유가 출중한 외모 때문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한보다 더 출중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도 잠시 눈을 돌려 보게는 했지만 나한만큼 사람 자체를 끌지는 못했다. 또한, 나한이 운동을 잘 하는지, 피아노를 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나한에게 이끌리듯이 다가오곤 했다.
게다가, 나한과 함께 있으면 지루하지가 않았다. 왠지는 모르지만, 묘하게도, 나한은 혼자서 독방에 갇혀 있어도 재미있는 무언가를 발견하여 무료함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나한에게는, 진짜로,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듯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나한에게 항상 호감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나한의 주위에서 사람들이 떨어질 날이 없었다.
배움
초
1.
부심은 나한을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나한이 놀고 있는 공원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공원의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나한이 그렇게 발랄하고, 자유롭고, 즐거워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혼자서 놀고 있었는데도 마치 옆에 친구가 있는 것처럼 웃음을 터뜨리면서 놀고 있는 모습이 전혀 혼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나한과 부심의 첫 만남이었다. 이후, 부심은 거의 매일, 거의 하루 종일, 나한과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언젠가 부터, 부심은 나한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오늘 뭐해?”
“나 너 꿈 꿨어.”
“오늘 엄마하고 안과 갈거야.”
“공원에 언제 나올 거야?”
또한, 밤에 나한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자기 전 행사가 되어버렸다.
“나 잠옷 갈아잆었어.”
“너 언제 잘 거야?”
“너 양치 했어?”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양치 안하면 이빨이 다 빠져서 밥을 못 먹게 된데.”
“내일 엄마가 책 사온데”
그렇게 부심은 나한과 한 시도 떨어지지 않는 단짝으로 지내면서 자랐다.
“같이 놀자.”
“이거 선물이야.”
“전화로 얘기하는데 너가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아.”
“그림책 사왔는데 같이 읽자.”
“나 심부름 가는데 같이 갈래?”
“어디가? 나도 같이 갈께.”
부모님이 이사를 간다고 할 때는 혼자 금식 시위까지 하면서 이사를 막았던 적도 있다. 단순히, 나한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이 부심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부심과 나한이 초등학교 6학년 졸업반이 될 즈음에는, 부심은 나한을 빼고서는 아무것도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난, 나한하고 결혼해서 평생 같이 살 거야.’
외동아들로 자란 부심이 아는 남녀 관계란 자신의 부모 같은 부부 관계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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